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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용목사 칼럼 (코너스톤교회)



갈색 빛 유학생

2017.07.26 17:38

UGN 조회 수:7382

UGN복음방송 코너스톤교회 이 종용 목사 복음 칼럼



갈색 빛 유학생


지금도 미국 비자를 받는다는 것이 수월한 일은 아니지만 그때에도 신학생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란 참 어려웠다. 그런데 대사관에 있던 크리스천 자매를 통하여 도움을 받게 해주셔서 대사관에서 쉽게 비자를 내주었다. 그렇게 하여 1982 1, 33세 되던 해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상 미국이라는 땅에 떨어져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신 더 힘들었다. 한국 사람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고,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신학교는 천사들만 다니는줄 알았는데 막상 입학해 보니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고, 도난사건도 몇번 일어났다.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입학했지만 여전히 옛 속석이 남아 있는 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에서 유학온 마클스라는 친구는 나만 보면 자신의 눈을 가로로 길게 잡아 늘이면서 놀려대었고, 또 어떤 친구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손가락으로 우리나라를 꾹 누르더니 보이지 않는다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실망 또 실망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장벽이었다. 영어가 하루아침에 되는가? 내 깐에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너무도 힘들었다. 심지어 아침, 저녁으로 코피가 터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더욱 더 굴뚝 같았다. 이때 내가 느낀 좌절과 절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학을 공부하는 내내 계속하여 나로 하여금 인내와 연단을 배우도록 하셨다.


어느 날 학장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뭔가 부탁을 하셨다. 얼핏 들어보니 무슨 순서에 찬양을 해달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기숙사에 들어와서 녹음된 학장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 주머닝는 항상 소형 녹음이가 있었다. 그리고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거기에 녹음하여 기숙사에 들어와서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8번정도는 들어야만 상대방의 말뜻을 제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학장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들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찬양만 부탁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금요일 예배시간에 설교와 간증 그리고 찬양 모두 해보겠냐는 말씀이셨다. 그런 학장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는 흔쾌히 하겠노라 대답만 한것이다.


기도하고 고민하던 가운데 목요일 저녁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나를 통하여 주님을 영접한 자매를 통역으로 세우기로 한 것 이다. 금요일 예배시간, 나는 약속대로 강단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저를 이 학교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에서 야유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쟁 후 폐허더미 위에서 아이에게 젖 물리고 있는 어머니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왓다고, 얼굴이 노랗다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이 예배가 끝나는 즉시 기숙사로 돌아가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피부색도 다르고 후진국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저를 대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세상으로 나가 주님의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들을 택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의 종으로 불렀는지 부르지 않았는지 분별하기 위한 도구로 저를 이곳에 보내주셨습니다.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저 같은 사람부터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와 같은 사람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면 신학공부를 하여 목회자가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크리스천인가 자문해보십시오.”


그랬더니 한 사람 두 사람 눈시울이 붉어진다. 또 여기저기에서 아멘 화답하기도 한다. 모든 설교가 끝난 후 찬양을 불렀다. 찬양하면서 보니까 앰프 시스템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노래를 시작하니까 피아노, 키보드가 반주되고 첼로, 바이올린, 플루트가 연주되는데 참으로 기가 막혔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부르는 찬양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가난한 마음으로 찬양했고 학생들은 한참동안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금요일 이후 나를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것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가 있었다. 영어실력이다.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니 시험만 보면 점수가 말이 아니다. 이런 내 상황을 알게 된 학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광고를 해 주셨다.
브라더 리의 공부를 도와줄 두명의 룸메이트를 구합니다.’
여기에 어번 객시올라와 조나단 멀퍼드라는 두 친구가 자원했다. 이 두사람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내 공부를 도와주었다. 하루 이틀 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몇 달, 몇 년을 쉬지 않고 한결같이 도와주었다. 언젠가 한번은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갔는데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기들은 나와 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과 한 약속이기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좋은 성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했다.


신앙상담: 310-530-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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