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목사님 싫어요
2019.10.09 14:30
UGN복음방송 유니온교회 김 신일 목사 복음칼럼
꼰대 목사님 싫어요
한참 동안 화제였던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 라는 책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82년 생으로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90년대에 출생한 신입사원들의 특이한 모습들을 관찰하며 책을 써 내려갔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내용인즉, 새로운 세대가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세대들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 여러가지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특성들을 관찰함으로, 어떻게 그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를 제안합니다. “목회 하면서 젊은 세대까지 잘 포용하는 목사가 되야 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요. 그 내용이 얼마나 재미 있는지 제자리에서 다 읽게 되었습니다.
들어보셨죠?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어” 라는 말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 말은 4000년 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문자를 비롯하여 (놀랍지 않습니까?) 동서 고금을 막론하여 계속 등장하고 있어요.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은 아무데서나 먹을 것을 씹고 다니며, 버릇이 없다” 라고 지적했으며, 동양의 한비자 또한 “지금 덜 떨어진 젊은 녀석이 있어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욕해도 움직이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을 모른다.” 라면서 젊은 세대를 비판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나름 쿨~ 한 목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저도 종종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세대간의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한동안 부정적인 은어 “꼰대” 라는 말이 잘 사용되지 않았는데 2000년대 들어와, 권위주의와 잔소리에 대한 반발의 의미까지 더해져, 그 지칭하는 이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이 말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직장인 90퍼센트는 자기 조직 내에 “꼰대” 가 있다 합니다.” 그 전형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아요: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유형 (23%). “상명하복 (까라면 까)” 유형 (20%). “전지전능 (내가 해 봐서 안다)” 유형 (16%). “무배려-무매너 (네가 이해해라)” 유형 (13%). “분노조절 장애 (너 미쳤어?)” 유형 (10%). “반말하는 (다짜고짜, ‘야!’) 유형 (9%). 음, 하나 하나 살피면서 저 자신을 돌아 보았습니다. 책 중간에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 를 체크하는 리스트가 나오는데, 위기감을 가지고 저를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슬프지만, 저도… 꼰대더라구요.
결론적인 제안은 우선 “그들의 말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들의 삶을 관찰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찰의 방법으로 “참여”를 제안합니다. 지난 주간에,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과 우연히 스타벅스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했는데, 갑자기 툭 터져 나온 아이의 말을 듣습니다. 마냥 철 없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고민들을 하고 있더군요. 쿨~ 한 척 잘 듣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꼰대처럼 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입니다. 한결 가까와 진 듯 합니다. 지난 Youth Retreat 에서 로이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는 인생의 진지한 고민을 껴 안게 된 아이 이야기를 듣고, 그 엄마를 격려합니다. 지금 잘 해 주셔야 한다고. 잘 듣고 격려 해 주시라고요. 그리고 나서 스스로 다짐 합니다. 아이 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든 세대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관찰하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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