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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종기목사 칼럼 (충현선교교회)



가서 너도 나와같이 하라

2022.09.08 16:16

UGN 조회 수:5104

UGN복음방송 복음칼럼: 충현선교교회 민 종기 담임목사


가서 너도 나와같이 하라 


어느날 율법사가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25).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 다시 묻습니다. 질문에 답하여 법에 정통한 이 율법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바르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 대답을 옳다고 하시며, “이를 행하면 살리라” 가르칩니다.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웃의 범위를 정하는 것보다 고통당한 자의 이웃이 되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영생과 관련된 필연적인 것임을 알리고 순종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하여 몇 가지의 행동 패턴을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법에 따르는 율법사의 행동 패턴입니다. 여기서 율법사는 나 중심의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이웃이 누구인가 결정되면 이웃 사랑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비유 속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피합니다. 시체에 접촉하여 부정한 사람이 되면 아니 된다는 레위기 21장의 정결 예법을 지키며 종교인들은 자신의 바쁜 일정을 위하여 반쯤 죽은 사람 곁을 지나칩니다. 이웃을 규정하는 일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 따라 다양합니다. “모세의 윤리”를 행하는 것은 나쁘지는 않지만, 영생의 길이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웃됨의 윤리”라 하겠습니다. 이 명령은 나 중심의 윤리가 아니라 강도 만난 자의 상황, 타인을 위한 긍휼의 윤리입니다. 거반 죽게 된 사람을 간호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는 강도 만난 자를 주막에 데리고 가서 비용을 제공하고 주막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누구인지를 나 중심에서 따지기보다 어려운 사람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타인 위주의 사랑의 윤리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셋째로 “메시야의 윤리”라는 차원에서 이웃됨의 윤리를 좀 더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이웃이 되는 방식이나 횟수나 범위는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페퍼다인대학의 정치학 교수였던 스티븐 몬스마(Stephen Monsma, 1936-1917)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반복적인 강도행각이 발생한다면, 치료와 봉사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고 말합니다. 그 상황에서의 이웃 사랑은 로마 분견대의 파송을 위한 활동, 혹은 자경단의 조직이나 활동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은 개인의 도움은 물론 안식년과 희년의 공동체적 규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나 율법적인 선포과 규제에 의하여 희년을 실행하기보다 메시야를 믿는 백성들이 자발적인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웃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진정한 이웃됨의 윤리는 전도는 물론이요 봉사와 재난의 예방을 위한 사회활동으로도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앙상담: zanchius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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