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핵심
복음의 핵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 역사상 ‘아디아포라’의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종교 개혁 기간에 멜라히톤과 엄수파 루터란 사이의 아디아포라 논쟁으로 복음의 핵심적인 것과 아디아포라 적인 것으로 나뉘어 복음의 핵심을 지키기 위하여 아디아포라 적인 것은 타협하는 것은 정당하다와 그렇지 않다라는 논쟁이었습니다.
아디아포라는 헬라어로서 용어적으로 “중요하지 않음” “차이 없음” 이라는 뜻으로, 크게 옳지도 그르지도 않거나, 성경이 허용 또는 금하지도 않거나, 또는 가치 판단으로서 중립성에 관련된 것을 언급할 때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몇 번의 아디아포라 관련된 문제가 있엇습니다. 한번은,고전 8-10장의 이방 우상에게 바쳐지는 음식 문제와 고기 먹는 문제와 또 한번은 디도와 디모데의 할례 문제 였습니다.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게 하였고, 디도에게는 억지로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아디아포라 영역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성령의 뜻에 따라 오로지 주님을 위하여 옆 사랑을 품고 움직였으며, 오로지 주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만을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아디아포라 문제는 역설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핵심은 부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성령님에 의한 완전 통치를 통하여 복음의 열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바울에게 복음의 열정은 로마교회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즉 교회에 대한 사도적 애정과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복음의 야성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위대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복음의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게 하여 복음의 아디아포라에서 헤매에게 합니다. 우리는 바울 처럼 복음의 야성, 야전성을 회복하여, 복음의 핵심에 치고 들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 시간의 목적은 인류 구원이요, 하나님 시간의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불의 혀는 야성이며 야전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머뭇거림 없이 십자가의 본질로 바로 들어 가셨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에 집중하기 위하여, 활활 타오르는 성령의 불의 혀의 불꽃으로, 더 이상 세상의 덩치와 광대함에 주눅들지 않고 그리고 복음의 아디아포라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믿음의 패기와 담대함으로 복음의 핵심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사도적 열정으로 십자가의 야성을 회복하여야 할 때 입니다.